아에로플로트, 러시아항공 탑승기 * 저렴한 항공권=수화물 분실(?) / 드디어 핀란드 헬싱키로 떠나는 날, 핀란드 교환학생이야기
인천 → 모스크바 사라메티예보 → 헬싱키 반타
2016년 9월 5일, 드디어 핀란드 헬싱키(Helsinki)로 떠나는 날. 내가 이용한 항공사는 아에로플로트(Aeroflot, 러시아 항공)로 러시아 모스크바(Moscow, Russia) 사라메티예보(Sheremetyevo International Airport)에서 환승하는 항공편이었다. 가기 전에 아에로플로트 후기를 찾아보니, 짐을 분실했다든지 연착 때문에 환승 비행기를 놓쳤다든지 등등의 흉흉한 후기가 있어서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내식은 맛이 없었다.
인천공항(ICN)을 출발한 비행기는 약 9시간 30분 후, 모스크바 사라메티예보(SVO) 공항에 도착했다. 이제 여기서 헬싱키(HEL)로 가는 비행 편으로 환승하면 되는데, 나는 여러 번 탑승권을 다시 보며 어느 게이트로 가서 어떤 비행기를 타야 하는지 확인했다. 혼자였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쯤부터는 한국인은 오로지 나 혼자 뿐이었다. 한국어는 더 이상은 들리지 않았고, 한국인 비슷해 보이는 사람도 더 이상 없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길에서 우연히 외국인을 마주치면 무척 신기해하곤 했는데, 이젠 내가 그 외국인이 된 것이었다. 재밌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제부턴 정말로 모든 것을 혼자 해야 된다는 생각에 걱정도 됐다. 아직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이 머나먼 타국 땅에서 홀로 살아간다는 점이 한편으론 설레게 했다. 모든 게 처음 시작으로 돌아간 느낌.
헬싱키행 비행기에 올라타니, '내가 교환학생을 가는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10년 전에 막연하게 꾸던 꿈이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니. 때는 한국 시간으로 밤 12시를 넘겼고 모스크바 시간으로는 저녁 7시쯤이었는데, 계속 서쪽으로 해를 따라가고 있어서 아직 해가 지지 않았었다. 비행기는 거의 텅텅 비어있었고, 바깥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 밖에는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러시아의 시골 풍경이 보였다. 그러다가 지금부터라도 핀란드어를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인천에서 모스크바까지 오는 내내 펼쳐보지 않았던 핀란드어 책을 꺼내 보았다. 잠시 책을 보고 있으니, 한 남자승무원이 네모난 종이 상자에 담긴 기내식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갑자기 승무원에게 핀란드어로 뭔가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어쩐지 헬싱키행 비행기에서라면 핀란드어가 통할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방금 책에서 본 문장을 말했다.
"Mika tama on?"
이게 뭐예요?
그 스튜어드는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벌렸다가, 순간 멈칫하고는 말을 고르더니 "Chicken(치킨)"이라고 답했다. 아마도 무심코 핀란드어가 나올 뻔했다가 다시 집어넣고, (어쩌면 러시아어도 살짝 나올뻔 했다가) 내가 알아들을 만한 단어를 고르느라 잠시 머릿속을 헤맨 게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지금이라면 "kana(핀란드어로 치킨)"라고 답해도 이해하겠지만, 핀란드어 책을 막 꺼내 읽던 당시의 나는 모르는 말이었으니까.
창 밖을 보니 아직 러시아였다. 그러다가 곧 바다가 보이더니 다시 육지가 나타났는데 거기엔 녹색이 울창한 해안이 있었다. 난생처음 본 핀란드였다. 그 땅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여기가 바로 앞으로 내가 살게 될 곳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국 시간으로 이미 새벽 2시를 넘은 시간이었는데, 헬싱키에서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점점 땅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난생처음 핀란드, 헬싱키 도착
드디어 핀란드 헬싱키 반타 국제공항(Helsinki-Vantaa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했다. 2번 터미널에 도착해 나오니 한국어가 여기저기 보였다. 이 먼 곳에도 한국어가 있다는 게 무척 반가웠다. 헬싱키 공항에는 한국어가 많지만 거기서 끝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한국어는 정말 그걸로 끝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밤 9시가 넘어있었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일단 핀에어(Finair)에서 운행하는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바로 시내로 이동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교통카드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어떻게 시내까지 가는 지도 몰랐다. 그저 빨리 헬싱키 시내로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핀에어 리무진 버스에 올라타서는 뒷자리 승객에게 내 주소를 보여주면서 Rautatienkatu(나의 HOAS 아파트 주소)에 가려고 하는데 이 버스를 타는 게 맞는지 물어봤다. 그러더니 왼쪽 건너편 자리에 앉은 승객이 답해주며 "이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라고 했다. 두 분은 계속해서 친절하게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답해줬고, 그렇게 나는 어딘지도 모르겠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하늘은 완전히 캄캄해져 있었고, 길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헬싱키는 늘 대체로 거리에 사람이 없다). 버스에서 함께 내렸던 사람들도 각자의 길로 뿔뿔이 흩어지고, 나만 덩그러니 버스에서 내린 그 자리에 남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내린 곳은 Rautatientori(Railway Square, 헬싱키 중앙역 Central Railway Station)였는데, 그땐 그런 거 하나도 몰랐으니 그냥 어딘지 모를 곳에 혼자 남겨진 거였다. 나에겐 그저 낯선 곳에서의 늦은 밤이었고 거리엔 사람이 없었으며, 밤은 점점 깊어져 가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뿐이었다. 아직 인터넷도 없고, 교통카드도 없고, 어디서 어떻게 대중교통을 타는지도 모르겠는데, 밤이 늦었으니 어서 빨리 숙소에 가는게 더 급하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파리에서 살 때, 해가 진 뒤에는 밖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게다가 9월 초의 한국은 반팔에 반바지를 입으면 적당할 정도의 더운 늦여름이지만, 헬싱키는 가을 중순처럼 추웠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길을 찾아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제 어떻게 집에 가면 좋지?
그때의 난 알 수 없는 곳에 덩그러니 혼자 떨어졌다고 말하면 딱 어울리는 상황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