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행 비행기에 올라타니, '내가 교환학생을 가는구나'라는 실감이 났다. 10년 전에 막연하게 꾸던 꿈이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니. 때는 한국 시간으로 밤 12시를 넘겼고 모스크바 시간으로는 저녁 7시쯤이었는데, 계속 서쪽으로 해를 따라가고 있어서 아직 해가 지지 않았었다. 비행기는 거의 텅텅 비어있었고, 바깥구경을 좋아하는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창 밖에는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러시아의 시골 풍경이 보였다.
그러다가 지금부터라도 핀란드어를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인천에서 모스크바까지 오는 내내 펼쳐보지 않았던 핀란드어 책을 꺼내 보았다. 잠시 책을 보고 있으니, 한 남자승무원이 네모난 종이 상자에 담긴 기내식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무슨 생각이었는지 갑자기 승무원에게 핀란드어로 뭔가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어쩐지 헬싱키행 비행기에서라면 핀란드어가 통할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방금 책에서 본 문장을 말했다.
"Mika tama on?"
이게 뭐예요?
그 스튜어드는 무언가를 말하려 입을 벌렸다가, 순간 멈칫하고는 말을 고르더니 "Chicken(치킨)"이라고 답했다. 아마도 무심코 핀란드어가 나올 뻔했다가 다시 집어넣고, (어쩌면 러시아어도 살짝 나올뻔 했다가) 내가 알아들을 만한 단어를 고르느라 잠시 머릿속을 헤맨 게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지금이라면 "kana(핀란드어로 치킨)"라고 답해도 이해하겠지만, 핀란드어 책을 막 꺼내 읽던 당시의 나는 모르는 말이었으니까.
창 밖을 보니 아직 러시아였다. 그러다가 곧 바다가 보이더니 다시 육지가 나타났는데 거기엔 녹색이 울창한 해안이 있었다. 난생처음 본 핀란드였다. 그 땅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여기가 바로 앞으로 내가 살게 될 곳이구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한국 시간으로 이미 새벽 2시를 넘은 시간이었는데, 헬싱키에서는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비행기가 점점 땅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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